서류상 업종은 도매업인데, 세액감면은 받을 수 있을까

1. 사건의 출발점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A사는 2014년에 설립됐습니다. 제품을 직접 만드는 공장은 없었습니다. 대신 제품을 기획해서 국내 식품제조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납품받은 완제품을 자기 브랜드로 판매하는 구조였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OEM·ODM 판매업, 회계·세무에서는 위탁제조업이라고 부르는 형태입니다.
A사는 2024년 2월, 자신은 설립 때부터 제조업(위탁제조업)을 해왔으니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을 적용해 달라며 경정청구를 냈습니다. 돌려달라고 한 금액은 2018 사업연도 법인세 3억 8,642만원, 2019 사업연도 법인세 4억 8,354만원, 합계 8억 6,997만원이었습니다.
국세청은 그 다음 달에 거부했습니다. A사는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제기했습니다.
2. 쟁점은 하나였습니다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은 감면 업종에 해당하는 사업으로 창업한 중소기업에 적용됩니다. 제조업은 감면 업종이지만 도매업은 아닙니다. 그리고 조세특례제한법은 기존 사업을 확장하거나 다른 업종을 추가한 경우를 창업으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쟁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A사는 설립 당시부터 제조업(위탁제조업)으로 창업한 것인가, 아니면 도매업으로 창업한 뒤 나중에 제조업을 추가한 것인가.
3. 국세청이 들었던 근거
국세청의 논리는 형식과 계약서 두 축이었습니다.
형식 측면
- 설립 당시 사업자등록의 주업태가 도매 및 상품중개업이었다
- 법인등기부와 정관 어디에도 제조업이나 유사 업종이 없었다
- 건강기능식품 연구개발·제조라는 목적사업이 등기부에 추가된 시점은 설립 후 2년 6개월이 지난 2017년 5월이었다
결국 사업 확장 또는 업종 추가에 해당하므로 창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약서 측면
위탁제조업이 제조업으로 분류되려면 생산할 제품을 직접 기획해야 합니다. 국세청은 A사와 제조업체가 맺은 계약서에 원료를 양측이 합의해 지정한다거나, 제품 디자인과 설명서 제작 책임이 제조업체에 있다는 조항이 있다는 점을 들어 A사가 제품을 직접 기획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4. A사의 반론
A사는 설립 초기에 원재료를 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던 사정 때문에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제조업을 목적으로 내걸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이후에 새로운 제조시설을 갖추거나 새 사업을 시작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방식, 같은 사업이었다는 것이죠.
5. 감사원의 판단
감사원은 국세청의 거부처분이 잘못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판단 근거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 형식이 아니라 실질로 판단해야 한다
감사원은 창업중소기업에 해당하는지를 법인등기부 등의 형식적 기재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영위하는 사업의 실질적 내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등기부에 제조업이 없다는 사실이 곧 제조업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2) A사는 실제로 제품을 직접 기획했다
감사원이 확인한 사실관계는 국세청이 본 계약서 조항보다 훨씬 구체적이었습니다.
- A사 대표는 법인 설립 전인 2014년 9월부터 제조업체에 원료의 종류와 중량을 직접 지정해 시제품 생산을 의뢰했다
- 2015년 3월 최종 제품 생산을 의뢰할 때는 주원료 12개의 함량과 비율을 지정했다
- 생산 의뢰서에는 제품 디자인을 A사가 제공하고 주원료는 변경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제조업체는 A사가 등록한 상표의 제품을, A사가 요구한 원료·제조방법·제조비율에 따라 생산해 전량 A사에 납품했다
계약서의 문구 몇 줄보다 실제로 오간 생산 의뢰서와 거래 실태가 더 무겁게 작용한 셈입니다.
(3) 매출 구조가 처음부터 위탁제조 중심이었다
| 구분 | 전체 매출 | 위탁제조 매출 | 비중 |
|---|---|---|---|
| 2015 사업연도 | 3억 4,189만원 | 2억 7,657만원 | 81% |
| 2016년 이후 | - | - | 95% 이상 |
| 2015 ~ 2019 누계 | 448억 9,397만원 | 433억 6,925만원 | 97% |
첫 소득이 발생한 2015 사업연도부터 이미 매출의 8할이 위탁제조 제품 판매였습니다. 감사원은 A사가 설립 당시 위탁제조업으로 창업해 2019 사업연도까지 이를 계속 영위한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
감사원은 국세청이 등기부·사업자등록증의 형식적 기재와 위탁제조계약서의 일부 조항만을 근거로 판단한 것은 창업중소기업 세액감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보고, 8억 6,997만원에 대한 경정청구 거부처분을 취소하고 세액감면을 적용해 법인세를 다시 계산하도록 결정했습니다.
6. 실무에서 가져갈 포인트
① 업종 판정은 등기부가 아니라 실질로 갑니다 — 다만 양방향입니다
이 결정은 등기부에 없어도 실질이 있으면 인정된다는 취지입니다. 반대로 등기부에 있어도 실질이 없으면 부인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감면을 노리고 목적사업만 추가해 두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② 위탁제조업의 관건은 "직접 기획"의 입증입니다
한국표준산업분류는 자기가 직접 제품을 기획하고 자기 계정으로 제조하게 해 자기 명의·책임으로 판매하는 경우를 제조업으로 봅니다. 이때 다툼이 되는 지점은 거의 언제나 기획의 주체입니다. 아래 자료들이 흩어져 있다가 필요할 때 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평소에 모아두시기 바랍니다.
- 시제품 및 본생산 의뢰서(원료 종류·함량·배합비율이 적힌 것)
- 제품 디자인 원본과 제공 이력
- 상표권 등록 증빙
- 배합비 변경 시 승인 기록
- 납품 전량이 자사로 들어온다는 점을 보여주는 거래 내역
③ 계약서 문구 한 줄이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국세청이 파고든 지점이 바로 위탁제조계약서였습니다. "원료는 양측이 합의하여 정한다", "디자인 제작은 제조업체가 책임진다" 같은 조항은 실무상 별 뜻 없이 들어간 표준 문구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과세관청 입장에서는 기획 주체를 부정할 결정적 근거가 됩니다. 제조업체가 제공하는 표준 계약서를 그대로 날인하기 전에, 기획·설계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문구상 명확한지 한 번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④ 경정청구 기한 관리
A사는 2024년 2월에 2018 사업연도분을 청구했습니다. 2018 사업연도 법인세 신고기한(2019년 3월)으로부터 5년이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한 달만 늦었어도 3억 8천만원은 기한 도과로 다툼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⑤ 불복 경로 선택
경정청구 거부처분도 엄연한 불복 대상입니다. 이 사건처럼 국세청이 거부하면 조세심판원 심판청구, 국세청 심사청구, 감사원 심사청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 심사청구는 처분 통지를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하며, 이를 거치면 행정소송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어느 기관이 유리한지가 갈리므로, 거부 통지를 받으셨다면 90일이 지나기 전에 상담받으시기 바랍니다.
마무리
제조시설 없이 브랜드와 기획력만으로 사업하는 구조는 이제 건강기능식품뿐 아니라 화장품, 생활용품, 식품 전반에서 표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사들의 사업자등록증 업태란에는 대부분 "도매 및 소매업"이 적혀 있습니다.
창업 초기에 수억원대 세액감면을 놓치고 계신 건 아닌지, 한 번 점검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