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잘될수록 손실이 커지는 RCPS의 역설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 대표님께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작년보다 매출도 늘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는데, 감사보고서를 받아보니 수십억 원 당기순손실에 자본잠식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원인은 대부분 “RCPS(상환전환우선주)”에 있습니다. 같은 RCPS가 어떤 회계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자본이 되기도, 부채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채로 분류되는 순간, 회사의 가치가 오를수록 장부상 손실이 커지는 역설이 생깁니다.
1. RCPS란 무엇인가요?
RCPS(Redeemable Convertible Preference Shares)는 이름 그대로 세 가지 성격을 한 번에 가진 주식입니다.
(1) 상환권 : 일정 기간 후 투자자가 회사에 투자금(+이자 성격의 할증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2) 전환권 : 투자자가 원하면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권리
(3) 우선권 : 배당이나 잔여재산 분배 시 보통주보다 우선하는 권리
회사가 잘 안되면 투자금을 돌려받고(상환), 잘되면 보통주로 바꿔 지분 가치를 누리는(전환) 구조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하방은 막고 상방은 열어둔 상품이라, 국내 벤처캐피탈 투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형태입니다.
여기에 흔히 붙는 것이 리픽싱(Refixing, 전환가격 조정) 조항입니다.
후속 투자가 더 낮은 가격에 이뤄지거나, IPO 공모가가 일정 수준에 못 미치면 전환가격을 낮춰 투자자가 더 많은 보통주를 받도록 하는 조항입니다.
이 조항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2. 일반기업회계기준 : 전부 자본
비상장 중소기업 대부분이 적용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에서는 RCPS를 법적 형식에 따라 주식, 즉 자본으로 봅니다.
따라서 발행금액은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으로 계상되며, 상환권이나 전환권을 따로 분리하여 평가하지 않습니다.
3.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 부채 + 파생상품부채
상장사, 그리고 상장을 준비하며 K-IFRS를 도입하는 회사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K-IFRS는 법적 형식이 아니라 계약의 경제적 실질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1) 상환권 : 투자자가 상환을 청구하면 회사는 상환을 하여야 하며, 이를 회사가 회피할 수 없습니다. K-IFRS에서는 현금 지급 의무를 회피할 수 없는 계약을 금융부채로 분류합니다.
(2) 리픽싱 조항이 있는 전환권 : 리픽싱 조항이 있으면, 향후 주가나 후속 투자가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주식 수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전환권은 자본이 아닌 파생상품부채로 분류되고, 매 결산 시 공정가치로 평가해 그 변동을 당기손익에 반영해야 합니다.
4. 역설이 생기는 원리
이제 문제가 보이실 겁니다.
전환권은 회사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와 비슷합니다.
회사의 영업이 잘 되어 가치가 상승하면 전환권의 공정가치가 상승합니다. 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회사가 인식한 파생상품부채의 장부금액이 증가하고, 파생상품평가손실이 발생하여 당기순이익이 감소하게됩니다.
RCPS의 역설은 회계기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계약의 실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결과입니다.
회사 가치가 오르면 투자자에게 넘겨줄 몫이 커지는 것은 경제적으로 사실이니까요.
다만 그 결과가 "회사가 어렵다"는 신호로 오해받지 않도록, 미리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